#지루한 주말이 싫었다.

그냥 평범한 그런 주말이었다. 하지만 왠지 이런 뻔한 주말이 싫고, 뭔가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은, 그런 무모함이 내 가슴을 치고 올라온 날이었다. 그래서 남편에게 제안했다.

"오빠 , 우리 차 없이 장 보러 가볼래?"

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군말 없이 오케이를 날려줬다. 역시 내가 결혼 하나는 잘했다 싶었다. 그렇다, 내 남편은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. 

 

 

# '트레이더 조' 마트를 향하여

그렇게 장보기 원정단이 꾸려졌고, 우리는 Trader Joe's(트레이더 조)라는 미국 마트를 가기로 결정했다. 

미국의 Trader Joe's 마트는 높은 퀄리티의 식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미국에 몇 안 되는 진짜 괜찮은 마트 중 하나이다. 미국 주부들의 사랑을 받는 이 마트가 (우리 집 근처에는 당연히 없고) 차 타고 15분 거리에 하나 있었다. 

그렇게 주머니에 핸드폰, 지갑만 넣은 채 우리는 겁 없이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. 

 

 

#도착 언제 하냐

처음엔 몸이 가벼웠던 것 같다. 재밌었다. 하늘거리는 바람도,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재밌었다. 그런데 아무리 페달을 휘저어도 곧 도착할 것 만 같았던 마트가 나오지가 않았다. 

"오빠, 우리 언제 도착해?"

앞서 달리고 있는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.  그렇다, 이 남자는 페달 밟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내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. 

그는 이미 내 시야에서 뿌옇게 사라지고 있었다.

 

그냥 나도 포기하고 계속 달렸다. 

 

#간절한 차 생각

그렇게 겨우 도착했지만 이미 난 많이 지쳐있었다. 진짜 조금만 사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역시나 결제의 순간엔 우리의 양손이 가득 차 있었다. (이건 진짜 변명이 아니고 다음 포스팅 때 트레이더 조 장보기를 한편 써야겠다. 한 번쯤 먹어보고 싶고, '이건도대체 어느 천재의 머리에서 나온 맛이야?' 하는 매력적인 식품들이 나의 손을 조종해(?) 카트에 담았다. 또 영수증은 다른 마트들의 절반 가격이니 이건 진짜 대박. 미국에 여행 오신다면 꼭 한번 트레이더조에 방문해보시길.)

그렇게 본능에 충실했던 나의 장보기는 비장하게 끝이 났다.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다시 자전거였다. 그렇게 우리는 다시 아무 말없이 페달을 밟았다. 

서로가 서로에게 할 말은 많지만 일단 끝날 때까진 아무 말하지 말자 라는 무언의 약속이었던 듯하다

그는 또다시 그렇게 사라져갔다

 

시원했던 바닷바람은 어느새 내 머리카락과 합세해 얼굴을 철썩철썩 쳐대고 있었고 내 허벅지는 감각을 잃어버린 채 영혼 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었다. 그렇게 달린 지 40분이 지나자 멀리서 우리 집이 보였다. 그날따라 언덕 위에 위치한 우리 집이 참으로 미웠다. 

 

#도착_원정대 실신

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죽음의 레이싱이 끝난 뒤 우리는 뻗어버렸다. 음식을 냉장고에 차마 넣지도 못한 채 그렇게 마트 원정대는 백기를 들어버렸다. 그냥 시켜먹을 걸...

 

#마무리

미국에서는 모두가 차를 탄다. 차가 아니면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. 친구 집, 산책로, 헬스장, 심지어 커피를 한잔 마시러 갈 때에도 차를 탄다. 나같이 본 투 비 한국 라이프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점이 매우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. 조금만 걷고 싶을 때에도 땅이 너무 넓으니 결국 차를 타게 되고 이 때문에 살만 더 찐다. 왜 미국에 비만이 많은지 한 번에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. 게다가 저녁에 산책이라도 하려 하면 길가에 불이 다 꺼져 있다. 치안을 그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으니 총 맞기 싫으면 그냥 집에 얌전히 있는 편이 낫다.

이게 내가 느낀 미국 생활 중 가장 불편한 점 중 하나이다. 난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인데, 미국은 이런 타입의 사람에겐 매우 불편한 곳이긴 하다.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땐 실컷 걷고 뛰고 구르고(?) 해볼 테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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